7월 4일 발간 예정인 '복지국가 혁명'책자를 소개합니다
한국사회의 복지전문가들의 역작입니다
출판기념회 및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창립대회가
7월 4일 오후 7시 국민일보 빌딩 1층에서 열립니다.
많이 오세요..
책의 앞부분의 일부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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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혁명 2부
- 미완의 민주화, 결함 있는 민주주의

(문진영) 정치형식적인 면에서 많은 부분이 민주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단순한 정치적 권리의 획득이었을 뿐 시민적 권리나 사회적 권리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민주주의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사회적 권리나 연대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개혁진보 세력이 민주주의의 개념을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시민적 권리, 사회적 권리까지 확장하지 못했는가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가령 세금 문제를 봅시다. 민주투사임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사회복지 증가에는 찬성, 하지만 이를 위한 ‘증세’에는 반대 혹은 주저주저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고자 하는 민노당과 열린우리당도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역사적 뿌리는 과거 식민지 시대까지 내려간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았던 나라들, 이들은 오늘날 대부분 선진국인데, 이런 나라들에서는 개개인이 스스로 만든 시민사회와 국가공동체에 대한 헌신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가령 국가를 위해 세금을 내는 경우에도 그것이 당장은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나에게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압니다. 국가공동체 의식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의 경우 국가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곧 일본 제국주의 혹은 독재국가에 대한 부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세금을 국가에 빼앗기는 돈이라고 여깁니다. 저도 국가에 의한 공공서비스의 필요성을 믿는 사람입니다만 그런데도 세금 낼 때는 굉장히 아까워요. (웃음).

따라서 우리가 이 자리에서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과거를 복원하자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복지국가 혁명을 통해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이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상이)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만을 의미하는 정치적 민주화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참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직장에서 40대 후반의 가장이 갑자기 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자식들이 중고등학생인데 부인은 가정주부라서 경제 능력이 없습니다. 작은 아파트 20평짜리 가졌지만 가장이 죽고 나니 부인과 그 자식들이 생계가 막연합니다. 절망적입니다. 이런 일이 ‘민주화’된 국가에서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국민 대다수가 이런 일을 일어날까 두려워하며 절망하는 사회가 정말 민주주의 사회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복지국가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참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문진영) 슈미트 교수라는 분은 민주주의의 구성요소를 몇 가지로 구분해서 그 중 하나라도 문제가 있으면 “결함 있는 민주주의”라고 규정합니다. 가령 사회복지 지출이 낮은 나라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대부분 행정부의 권한이 너무 강하고 정당과 의회의 힘이 약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가 저소득층의 생활보장을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 같은 법을 통과시켰는데도 행정부가 그것을 퇴색시키는 시행령을 만들고 또한 그 집행을 가로막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난 20년간의 민주화는 국가체제 전체의 민주화가 아니라 그 일부, 즉 국회와 시민사회의 민주화에 불과할 뿐, 행정부 특히 경제부처를 민주화하는데서 실패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내건 민주화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결함 있는 민주주의’입니다.

혁신경제의 기반인 복지국가

(정승일)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행정부, 특히 재정경제부와 같은 경제부처의 권력이 붕괴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으며 오히려 민주세력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재정경제부가 주도한 지난 10년간의 이른바 ‘시장개혁’이야말로 바로 국민들의 삶을 이토록 불안하고 절망에 빠뜨린 원인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한미FTA 역시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재정경제부가 주도하고 개혁세력이 일부 후원한 이른바 ‘시장개혁’의 논리는 ‘97년도 경제위기를 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경제구조의 배경에는 정부주도형 경제성장이 있다고 보았지요. 또한 기업들이 과거에 내걸었던 “회사를 가족처럼”이라는 구호도 고비용 저효율의 원천이라고 이들은 간주했습니다.

그러므로 시장개혁 세력은 이제 정부는 개입하지 말고 시장원리를 도입하자, 기업들도 직원을 가차 없이 자를 수 있어야 한다, 능력급제나 연봉제를 도입하고 무능한 40대는 다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모든 ’시장주의적 개혁‘이 민주화 세력의 동의와 후원 하에 진행됐습니다. 당시 무더기로 잘린 사람들이 통닭집, 음식점을 차리니 공급과잉으로 장사가 잘 될 리가 없지요. 많은 이들이 망하고, 그러다가 카드빛, 사채빛으로 무너지고, 그러다가 끝내는 온가족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은행의 경우에도 민주화 세력과 시장주의 개혁세력은 관치금융 때문에 금융위기가 터졌으니 관치금융 하지 말라며 은행들을 민영화하고 해외매각하고, 은행도 국가적 목표보다는 수익성을 추구해야 된다고 밀어붙였습니다. 그 결과 은행들은 수익성만 추구하다 보니 안전하게 돈 되는 쪽으로만 대출을 하고 그러니 은행들이 부동산 담보대출을 늘려 요즘 같은 부동산 투기 열풍을 도와주고요.

요즘 은행가면 돈 없는 사람들은 찬밥 취급받습니다. VIP 룸이니 Private Banking이니 해서 소수의 상류층 자산가들만 대접하고 그런 분야로만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시장원리, 경쟁원리의 확산이 바로 ‘시장개혁’의 요체인데, 시장은 원래부터 돈 있는 사람들의 교환 장소이며 돈 없는 사람들은 내쫒기는 곳입니다.

‘98년 이후의 시장개혁이 끊임없이 삶을 위협하고 불확실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하이에크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에 따르면 불확실성이야말로 혁신의 원천입니다. 불확실하면 사람들은 자꾸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창조적 파괴를 하려 한다며 시장원리를 옹호한 것이 하이에크류의 경제학자입니다. 그렇지만 시장원리는 모든 것을 유동화시키고 모든 것을 유연하게 만듭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허용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화 시켜버렸고 적대적 M&A 허용으로 자본시장을 유연화시켰고 이제는 FTA로 온갖 것을 다 시장원리로 유연화시킵니다.

이렇듯 경제적 삶이 유연화, 유동화되니 어느 것도 고정되지 않고 어디에도 몸과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98년 이후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의 원인은 바로 ‘시장개혁’입니다.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명명된 미국식 자본주의의 전면화, 즉 선진국 최악의 사회복지를 가진 자본주의 원리의 전면화가 바로 삶의 불안의 원인입니다.

(윤종훈) 시장원리의 전면화, 유연성 원칙의 전면화가 초래한 악영향을 지적하고 계신데, 그리고 그것이 초래한 불확실성이 마치 ‘혁신’의 원천인양 이야기하는 하이에크식 자유주의 경제사상을 비판하셨는데, 하지만 우리가 마치 혁신 자체를 부정하거나 시장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하이에크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혁신을 위해서는 유연성과 불확실성만으로는 않되고 안정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오늘날 OECD와 다보스 포럼도 세계 최고의 혁신능력을 인정하는 덴마크입니다. 덴마크는 대표적인 복지국가인데 그럼에도 노동시장 유연성을 과감히 받아들였습니다. 기업주가 언제든지 노동자를 해고할 있는 정리해고가 자유롭고 또한 노동자도 실직상태에서 다시 재취업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러한 해고를 인생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휴식기로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복지국가가 그 노동자에게 노동시장에 요구하는 숙련도나 지식을 갖출 때까지 2년이고 3년이고 실업수당으로 먹고 살게 해주고, 배울 수 있게 해주니까요. 기업의 필요에 따라 구조조정이 되더라도 사람들은 이를 쉽게 수용하고 이를 일종의 기회로 간주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세계화와 개방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혁신원리와 경쟁원리는 장기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원리를 작동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복지국가 혁명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불안한 시스템 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10년간의 개혁진보 세력을 반성하자면,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운동도 이익집단화되고 있습니다. 시장주의, 주주자본주의, 이런 것들이 진보고 개혁인 것으로 착각하다보니 아직도 새로운 가치를 못 찾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어야 합니다. 과거 민주화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이제 새로운 혁명적 관점에서의 한국사회의 미래 100년을 제시하는 패러다임을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복지국가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시 뭉치지 않으면 막강한 시장주의 세력의 힘을 막을 수 없으며 국민들의 불안은 계속될 것입니다.

(정승일) 물론 저도 하이에크의 생각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혁신능력을 가지려면 먼저 적절한 교육과 교양을 쌓아야 합니다. 하이에크 자신도 높은 교육을 받았던 유태인이었습니다. 높은 교육을 받았다는 얘기는 뭔가 집에 돈이 많아 ‘안정된 삶’을 누렸다는 것인데, 안정된 삶의 중요성을 무시한 채 혁신을 이야기하는 하에에크류, 공병호 류의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

혁신과 창조는 인간이 안정된 삶을 누리며 스스로 학습하는데서 즐거움을 느낄 때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주거가 안정되고 노후가 보장되어야 마음이 안정되어 책을 읽을 것입니다. 당장 돈이 없어 1달 뒤 생계를 걱정하는 대학생은 책을 읽어도 그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배규식) 정부는 98년도 이후에 시장개혁에서 지식기반 경제니 혁신주도형 경제니 하는 것을 내걸었는데, 지금처럼 일부 소수만 안정된 삶을 누리는 사회구조에서는 소수의 선발된 핵심인력들만 혁신과 지식기반을 위한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혁신주도형 경제, 지식기반 경제에서 배제됩니다. 선진국 수준의 사회보장과 주거, 의료, 노후보장을 하지 않는 한, 선진국형의 혁신경제도 만들 수 없습니다.

(이태수) 우리는 2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이제야 복지를 확충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선진국 중 사회복지를 가장 적게 한다는 미국과 일본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유럽 국들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수준입니다.

(이상구) 심장이 수축해서 만들어 내는 혈압은 적정할 경우 구석구석 혈액을 보내는 좋은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혈압이 너무 높으면 혈관이 터져버리고 맙니다. 경쟁압력과 시장압력은 너무 심할 경우 사회를 폭발적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경쟁압력과 함께 이를 견뎌낼 수 있도록 견실한 사회복지를 제공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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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