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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투표의 미래에 대한 중앙일보 이양수 기자의 칼럼입니다.

새로움이 낡은 것을 이깁니다..



◨ [중앙-분수대] 모바일 투표

한국에서 휴대전화(모바일 폰) 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1988년 7월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안 돼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4200만 명을 넘었다. 보급률로 따지면 87.7%다. 휴대전화 단말기만 있으면 문자메시지는 물론, 게임·쇼핑·TV 시청·위치정보·금융거래 등 수십 가지 작업을 할 수 있다. 청춘 남녀의 ‘작업’도 휴대전화 번호를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요즘 정치권에 때 아닌 휴대전화 바람이 불고 있다. 원내 1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이 대통령 후보 경선을 위해 모바일 투표 선거인단을 24만 명이나 모집하면서다. 세 명의 후보는 ‘모바일 표심’을 잡느라 사력을 다하고 있다.

공식 선거에서 모바일 투표를 처음 시도한 나라는 스위스라고 한다. 2005년 10월 취리히주 뷜릭의 지방선거에서 주민 1만6700여 명이 PC와 휴대전화를 이용해 투표했다. 모바일 투표는 우편·인터넷 투표의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투표 현장에 직접 가지 않고 어디서든 한 표를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투표율이 올라가고 바닥 민심이 위력을 발휘한다. 개혁을 기치로 내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는 2001년 일반 당원들의 우편 투표에 힘입어 자민당 내 최대 파벌 보스였던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를 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모바일·인터넷 투표는 비밀 투표를 보장하기 어렵다. 대리 투표와 컴퓨터 해킹 위험도 상존한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100%를 넘는 덴마크<30FB>핀란드<30FB>아이슬란드에서 도입되지 않는 이유들이다.

에버릿 로저스는 ‘혁신 확산 이론’에서, 혁신이란 소비자에게 무언가 새롭다고 여겨지는 제품이나 서비스라 했다. 그런 점에서 모바일 투표는 정치 시장의 ‘혁신 제품’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종이 투표의 시간·공간·심리적 한계를 깼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발상지로 꼽히는 그리스 아테네는 2500년 전 도자기 파편에 추방 대상자의 이름을 적는 도편(陶片) 투표를 실시했다. 금권(金權)·중우(衆愚)정치의 폐해도 적지 않았다. 이후 인류는 거수·박수·추첨·함성·줄서기 등 다양한 투표 방식을 경험했다.

각종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은 “인구 30여만 명인 지역구에서도 열성 당원 200~300여 명이 당내 경선판을 좌지우지한다”고 토로한다. 그 과정에서 금품과 이권의 음습한 거래가 싹튼다는 것이다. 모바일 투표 시대가 되면 과연 이런 볼썽사나운 모습이 사라질까. 2500년 전의 고민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양수 정치부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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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