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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김당 구영식 장윤선 전관석 기자
6월 10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자신의 후계자인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권력 이양절차에 맞춰 후계자의 애창곡 '베사메무초'가 울려퍼진 그 시각, 덕수궁 옆 성공회대성당 종루에서는 비장한 종소리가 42번 울렸다. 해방 이후 42년, 분단과 독재의 사슬을 끊고 민주주의의 새 날을 열자는 희망을 담은 종소리와 함께 스피커에서는 국민운동본부 인명진 대변인의 단호하고 비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삽화 ①] 1987년 6월 민주항쟁 :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오늘 우리는 전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40년 독재정치를 청산하고 희망찬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거보를 전 국민과 함께 내딛는다. 국가의 미래요 소망인 꽃다운 젊은이를 야만적인 고문으로 죽여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뻔뻔스럽게 국민을 속이려 했던 현정권에게 국민의 분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국민적 여망인 개헌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4·13 폭거를 철회시키기 위한 민주장정을 시작한다."
이에 앞서 국민운동본부는 "8~9일 전국민은 6·10 국민대회 참여를 권유하고 상호 격려하는 '전국민 전화걸기 운동'을 전개한다"는 행동강령을 발표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와 인터넷은 물론 PC통신도 없던 시절이었다. 6·10 국민대회의 의의는 이날 성공회대성당 주변에 뿌려진 '민주헌법 쟁취하여 민주정부 수립하자'는 제목의 유인물과 전국 22개 도시에서 울려퍼진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에 잘 축약돼 있다. '호헌철폐'를 통해 '민주헌법을 쟁취'하고, 직접선거에 의한 민주정부 수립으로 독재를 타도하자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87년 당시 재야의 구심점이었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의 주도하에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등 25개 가맹단체, 천주교, 개신교, 통일민주당,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재야 민주인사 등 2196명을 발기인으로 해 결성된 국민운동본부가 있었다. 비록 '낮은 수준의 연대'였지만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반독재 연합전선을 구축함으로써 6월 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국민운동본부는 대선을 치르는 87년 권력이양기를 맞이해 독재정권에 총공세를 가했고, 대통령 직선제라는 합법적인 권력경쟁의 공간을 쟁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합법적 절차의 확보를 통한 권력 경쟁의 결과는 민주화 세력의 분열과 권위주의 세력의 권력 연장이었다. 호헌철폐는 달성했지만 민주정부 수립에는 이르지 못한 '절반의 성공'이었다. 정통 야당과 재야 민주화 세력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97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선거에 의한 민주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채 안 된 지금, 민주화세력에게 권력을 빼앗긴 보수우파는 진보좌파 혹은 민주개혁세력의 활동공간이었던 '광장'과 '아지트', 그리고 '온라인'에서 '권불십년'(權不十年)을 외치며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한 절치부심의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삽화 ②] 2004년 10·4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 :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피와 땀으로 지키고 가꾸어온 대한민국의 안보가 지금 중대한 위협에 처해 있다. 한반도 적화통일을 획책하고 있는 북한의 공산 군사독재 집단과 이를 추종하는 남한의 친북공산 세력이 합세하여 국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고 총공세를 전개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수천명, 수만명 단위로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시위는 이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국민대회에 30만여명(주최측 자체 집계, 경찰 추산은 10만명)의 시민이 참여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애국시민 30만명의 10·4 의거'라고 부른 이 날 행사를 주도한 것은 300여개 보수우익 단체가 참여한 '반핵반김 국민협의회'(이하 국민협의회)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중 동원의 중심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재향군인회 그리고 150여개의 참여·후원단체로 구성된 친북좌익 척결 국민행동본부(이하 국민행동본부)가 있었다. 이에 앞서 '국민협의회'와 '국민행동본부'는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를 알리는 신문광고를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4회씩 내면서 참여를 유도했다. 이들은 신문광고에서 "권력의 불법 강행에 대해서는 국민저항권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 "가족단위로, 직장단위로, 마을단위로, 친구끼리, 동향·동업·동창·동기들도, 전문집단도, 택시기사도, 시장상인들도, 서울도, 지방도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모이자"고 행동강령을 발표했다. 특히 한기총은 교회주보와 예배 중 광고를 통해, 국민행동본부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참여를 독려했다. 보수우파는 기동성 있는 대중 동원으로 '광장'을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법적 대응과 이론 무장에서도 진보좌파에 대한 발빠른 '벤치마킹'으로 오히려 진보좌파보다 더 빠르게 '진보'했다. 국민협의회는 국민대회 직후 변호인단을 모집했고, '10·4 의거'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얻어맞아 다친 사람들의 신고를 받아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한편으로는 '이론무장을 위한 대강연회'를 개최했다. 광장과 아지트 그리고 온라인까지 잠식한 보수우파
흥행에 성공한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로 자신감을 얻은 보수우파는 '4대 악법 저지 전국민 궐기대회'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투쟁'을 통해 해마다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 특히 보수우파의 '선전선동대' 역할을 맡고 있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과거 민주화 운동권이 그랬던 것처럼 정기적으로 <국민교재>라는 보수우파 '의식화 교재'를 만들어 보수우파의 의견을 전파하며 우파의 체력을 담금질하고 있다. 어느덧 이들의 위세는 서울 광화문과 시청 그리고 서울역의 '광장'만 접수한 것이 아니라 진보의 아지트였던 인터넷 공간마저 위협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인터넷 공간은 진보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2004년 초를 기점으로 보수성향의 인터넷 매체들이 우후죽순 만들어지기 시작하더니 <독립신문> <미래한국신문> <데일리안> 등에 이어 <뉴데일리> <프런티어 타임스> <폴리뉴스> <브레이크뉴스> <데일리NK > <프리존> <코나스>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보수 인터넷매체의 시장 점유율은 진보 인터넷매체보다 뒤지지만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와 한나라당의 상승세 흐름을 타고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2002년 대선 국면의 온라인 세상을 '노사모'가 지배했다면, 2006년의 온라인 세상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장악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조갑제씨가 운영하는 '조갑제닷컴'이 '감별'한 '애국단체 주소모음' 리스트에 따르면, 현재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공동목표를 지지하는 '애국단체'는 무려 443개나 된다. 20년이라는 시간적 차이는 있지만, 87년 6월 민주항쟁을 주도했던 국민운동본부의 가맹단체가 25개였던 데 비하면 18곱절이나 늘어난 수치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가운데 상당수는 '허수'이거나 '겹치기 출연'으로 중복된 경우다. 이를테면 한 때 300여개에 달했던 국민협의회의 참여단체는 2006년 12월 현재 71개 정도로 줄었다. 그 대신 지난 2005년 6월에 '자유민주비상국민회의'(이하 비상국민회의)가 출범했다고 하지만, 국민협의회와 함께 한국 보수진영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는 비상국민회의는 막상 독자적인 홈페이지조차 갖고 있지 않다. 보수우파 세력이 힘은 전보다 세졌지만 여전히 '질(콘텐츠)'보다는 '양(외형)'에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 대부분이 '군 동기회'이거나 유명무실한 단체들이지만 그나마 일정한 '대오'를 유지한 채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합단체는 148개 후원·참여단체를 둔 '국민행동본부'이다.
행동하는 보수, 머리 쓰는 보수 정창교 정치컨설턴트는 "김대중 정부에서 반기를 들었던 보수세력이 노무현 정부 들어서 광화문 4거리에서 최초로 대규모 대중집회를 개최한 이후 반정부 집회시위가 일상화·대중화되는 등 조직화됨으로써 목소리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우파는 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야당과 재야세력이 함께 국민운동본부 같은 '단일대오'를 갖춘 연합전선 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셈이다. 실제로 올드라이트는 뉴라이트를 여전히 '빨갱이' 취급하고 있으며 뉴라이트는 올드라이트를 '꼴통보수'로 간주하고 있다. 심지어 올드라이트 내부에서조차도 서로의 반목으로 단일대오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 87년 당시 양김(김대중·김영삼)의 분열로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 실패했듯, 내년 대선에서 양박(이명박·박근혜)의 분열로 '좌파정권' 종식에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경보수파인 김용갑 의원의 징계를 둘러싼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의 갈등과 '양박'의 대리전 양상은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과연 보수우파는 내년 대선에서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에 <오마이뉴스>는 기획 '보수 대해부' 3부작을 연재한다. 1부는 보수 인맥지도, 2부는 보수 대논쟁, 3부는 집권 가능성을 다룰 예정이다. 우선 1부에서는 각 그룹별로 보수단체의 결성 배경과 인맥 그리고 지향점 등을 집중 해부한다. 1부에서 다룰 보수단체는 편의상 ▲뉴라이트 계열 ▲예비역 군인 모임 ▲보수 기독교 단체 ▲청년·대학생 그룹 ▲지식인 그룹 ▲반북 단체 ▲교육단체 ▲보수 언론 등으로 나누어 짚어본다. |
특별취재팀(dang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