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과학입니다
‘선거는 과학이다’.
정치컨설턴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조셉 나폴리탄(Joseph Napolitan)'의 말이다. 1968년 미국식 선거 기획으로 프랑스에서 후보자를 당선시키면서 최초로 ‘국제정치컨설턴트협회’를 창립한 그는, 이후로도 수많은 선거 경험을 통해 ‘후보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신속하게 더 많은 유권자에게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연구해 온 이 분야의 전문가다.
선거에 관한 그의 주장은 명쾌하다. 나라마다 선거문화가 다르지만 선거캠페인의 목적은 오직 하나, 유권자가 상대 후보가 아닌 우리 편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며, 성공적인 설득을 위해서는 주먹구구식이 아닌 몇 가지 과학적인 원칙이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내 직업을 물을 때면 나는 서슴없이 ‘정치컨설턴트’라고 대답한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아직 생소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정치컨설턴트협회에 등록한 사람만 7천여 명에 이르고, 미래의 가장 유망한 직종을 꼽는 데 빠지지 않는다. 클린턴 대통령을 만든 딕 모리스, 조지 부시를 대통령의 만든 칼 로브, 최근 오바마 대통령을 만든 데이비드 엑셀로드 같은 사람들이 그러하고, 이들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금융컨설팅이나 기업컨설팅이 어느새 우리 사회에 보편화된 것처럼 이제 정치컨설팅의 시대도 막을 열었고, 따라서 정치컨설턴트라는 직업이 낯설지 않을 뿐 아니라 유망하게 꼽히는 시대도 바로 코앞이다. 그만큼 우리의 선거도 과학으로 가고 있다는 반증일 테다.
내가 처음 선거에 뛰어든 것은 인천지역에서 택시노조 사무국장을 하던 1995년 인천광역시 시의원 선거사무장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던 택시기사 출신의 우리 후보가 조직과 재력이 막강했던 상대 후보를 크게 이긴 경험이 나로 하여금 정치컨설팅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그 후 각종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대선 캠프에서 기획책임자로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실전경험을 했고, 컨설팅 회사에서 이론적 토대가 되는 공부를 하기도 했다. 선거는 과학이라는 명제를 그런 다양한 경험 속에서 깨달았다.
현대 선거는 돈과 조직 중심의 아날로그 선거에서 자질과 비전 중심의 디지털 선거로 옮겨가고 있다. 웹2.0 시대에 맞는 ‘공유, 참여, 개방’을 모토로 하는 과학적인 선거운동이 승패를 결정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관여한 선거를 세어보니 무려 99번이나 되었다. 그 많은 선거를 통해 참으로 기쁜 승리를 맛보기도 했지만 가슴 아픈 패배도 적지 않았다. 그 중 가장 쓰라린 경험은 내 자신이 직접 출마에 나섰던 지난 17대 총선이다. 인천 계양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쫄딱 망했다. 대통령 탄핵의 후폭풍이 워낙 거셌던 탓이다.
그래서 나는 출마를 결심한 후보들에게 가장 먼저 “잘못하면 패가망신하니 웬만하면 출마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최선을 다하되 낙선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패배의 아픔을 감당할 자신이 있을 때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후보는 선거 자체를 즐긴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천재보다 노력하자는 자가 우선이며, 노력하는 자보다 선거 자체를 즐기는 자가 더 우선이다. 고로 충고하노니 선거를 준비하는 지금의 과정이 즐겁기는커녕 골치만 지끈거린다면 당장 출마 결심을 접으시라. 차라리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돕는 편이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 현명하다.
대개의 정치컨설턴트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후보의 선거를 컨설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직접 후보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컨설턴트 중에서는 유일하지 싶다. 때문에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당선 노하우 99가지’를 써보려고 한다.
그 동안 99번의 선거를 경험하면서 선거관련 책들을 많이 구해 읽었지만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이론서는 많지만 지금 당장 후보와 참모들이 실전에 적용할만한 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정치 컨설팅 세계와 비교하면 모범적인 선거 사례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제대로 축적되지 못해 선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항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이 현실이 늘 안타까웠다.
제5회 동시지방선거는 2010년 6월 2일에 치러진다.
내년 2월 2일은 시도지사 예비후보 등록, 3월 21일은 기초단체장 및 지방의원 예비후보 등록이 이루어지며, 선거일 180일 전인 올해 12월 4일부터는 사전선거운동 단속이 시작된다. 다시 말해 올해 말부터 지방선거 분위기가 본격화되는 시기인 것이다. 하지만 2006년과 비교하면 선거준비는 매우 일찍부터 시작되고 있다. 지난 2006년도에는 선거일 1년 전부터 각종 교육이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1년 반 전인 올 상반기부터 각 정당이나 시․도당에서 지방자치아카데미 열풍이 불고 있다. 덕분에 전문가랍시고 이런저런 강의를 하고 다니지만 늘 부족함을 느낀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두어 시간의 강의로는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더 귀담아 듣고 미리 준비하려는 후보들의 의욕에 찬 눈동자를 보면 더욱 그렇다. 시간 제약 없이 들려주고 싶은 말을 모두 담아내서 후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이렇게 책까지 쓰게 되었다.
이 책은 ‘출마 전에 체크해야 될 포인트’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 기획, 홍보, 조직’, 그리고 ‘매니페스토’와 ‘온라인 선거’에 초점을 맞췄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예비후보 선거운동’과 13일간의 ‘법정선거운동’에 필요한 내용들은 또다른 책으로 묶어 올 하반기에 출간할 예정이다.
아울러 내 경험 역시 제한적이기에 후보들이나 참모들의 생생한 사례나 돋보이는 아이디어는 내 개인 블로그(nagaza.pe.kr))를 통해 서로 공유하기를 제안한다. 그것이야말로 개방, 공유, 참여를 통해 우리 선거문화를 웹 2.0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까.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PG communication에 감사를 드린다. 원고를 써놓고도 출판을 망설이던 내게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책이라며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기에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아울러 99번의 선거과정에서 당선의 기쁨과 낙선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던 많은 후보들과 참모들에게도 고맙다. 그들과의 애정 어린 교감 덕분에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특히 ‘낙선거사’임에도 불구하고 늘 사랑으로 감싸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해준 광주와 서천의 부모님, 그리고 아내와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도 진한 사랑을 전한다.
2009년 5월 정창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