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출마예정자를 위한 가이드북 발간


내년 6월 2일 치러지는 지방자치선거를 꼭 1년 남겨둔 시점에서 출마예정자를 위한 가이드북이 발간되었다. <당선 노하우 99-지방선거를 위한 생생한 현장 기록>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출마를 결심한 예비후보들이 지금 당장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구체적인 선거운동 준비를 조목조목 일러주고 있다.

특히 기존의 선거 가이드북이 예비후보기간과 법정선거운동기간의 다양한 선거운동 방법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은 출마를 결심한 지금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소개하는 것이 특징.

대표저자인 정창교씨는 “선거 관련 강의를 다니면서 만난 많은 후보들이 출마를 결심하고도 무엇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짧은 강의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고 출간 이유를 밝혔다. 덧붙여 예비후보기간이나 법정선거운동기간의 내용은 하반기에 발간될 2권에 담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지금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확고부동한 출마 결심을 해라”
“출마 이유를 16자 이내로 확실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주변업무나 사업을 정리하고 이력을 준비해라”
“기억할 수 있는 독특한 명함으로 바꿔라”
“명함을 주기보다 받기 위해 노력해라”

현역의원이 아닌 정치신인이 선거운동기간이 아닌 평소에 할 수 있는 운동방법이란 거의 없는 게 우리나라 선거법의 현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출마를 선언하기 전에 꼭 거쳐야 할 ‘체크포인트 25’, 출마를 결심한 예비후보가 선거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선거운동 방법을 기획, 조직, 홍보 편으로 나누고 실례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출마를 결심한 예비후보들, 특히 처음으로 공직선거를 경험하는 후보들에게는 ‘따라 하기’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만족스런 선거준비가 되는 친절한 지침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출마경험이 있는 정치컨설턴트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조언

이 책에 이렇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유는 저자들의 독특한 경험에서 비롯된다. 각종 지방선거를 비롯해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에 다양한 역할을 맡아 관여한 경험이 있는가 하면, 저자 자신이 직접 후보로 출마한 경험까지 있기에 가능했다. 선거참모로 또는 후보로서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선거운동방법을 다룬 다양한 매뉴얼 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눈에 띄는 이유다.

‘시간이 돈을 이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돈보다 힘이 센 시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당선 노하우 99>는 일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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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책을 냈어요..
내년 6월 2일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알두고 '당선노하우 99'라는 제목으로....
정치컨설턴트가 제3자의 입장에서 쓴 선거전략서는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직접 후보를 해본 경험을 토대로 책을 썼습니다..




아무쪼록 내년 지방선거에서
좋은 후보들이 많이 당선되어..
지방자치를 발전시켰으면 좋겠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지역균형발전과 분권도
좋은 지방일꾼들이 많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아래는 제가 쓴 책의 서문입니다.


선거는 과학입니다

‘선거는 과학이다’.
정치컨설턴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조셉 나폴리탄(Joseph Napolitan)'의 말이다. 1968년 미국식 선거 기획으로 프랑스에서 후보자를 당선시키면서 최초로 ‘국제정치컨설턴트협회’를 창립한 그는, 이후로도 수많은 선거 경험을 통해 ‘후보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신속하게 더 많은 유권자에게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연구해 온 이 분야의 전문가다.
선거에 관한 그의 주장은 명쾌하다. 나라마다 선거문화가 다르지만 선거캠페인의 목적은 오직 하나, 유권자가 상대 후보가 아닌 우리 편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며, 성공적인 설득을 위해서는 주먹구구식이 아닌 몇 가지 과학적인 원칙이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내 직업을 물을 때면 나는 서슴없이 ‘정치컨설턴트’라고 대답한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아직 생소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정치컨설턴트협회에 등록한 사람만 7천여 명에 이르고, 미래의 가장 유망한 직종을 꼽는 데 빠지지 않는다. 클린턴 대통령을 만든 딕 모리스, 조지 부시를 대통령의 만든 칼 로브, 최근 오바마 대통령을 만든 데이비드 엑셀로드 같은 사람들이 그러하고, 이들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금융컨설팅이나 기업컨설팅이 어느새 우리 사회에 보편화된 것처럼 이제 정치컨설팅의 시대도 막을 열었고, 따라서 정치컨설턴트라는 직업이 낯설지 않을 뿐 아니라 유망하게 꼽히는 시대도 바로 코앞이다. 그만큼 우리의 선거도 과학으로 가고 있다는 반증일 테다.

내가 처음 선거에 뛰어든 것은 인천지역에서 택시노조 사무국장을 하던 1995년 인천광역시 시의원 선거사무장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던 택시기사 출신의 우리 후보가 조직과 재력이 막강했던 상대 후보를 크게 이긴 경험이 나로 하여금 정치컨설팅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그 후 각종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대선 캠프에서 기획책임자로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실전경험을 했고, 컨설팅 회사에서 이론적 토대가 되는 공부를 하기도 했다. 선거는 과학이라는 명제를 그런 다양한 경험 속에서 깨달았다. 
현대 선거는 돈과 조직 중심의 아날로그 선거에서 자질과 비전 중심의 디지털 선거로 옮겨가고 있다. 웹2.0 시대에 맞는 ‘공유, 참여, 개방’을 모토로 하는 과학적인 선거운동이 승패를 결정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관여한 선거를 세어보니 무려 99번이나 되었다. 그 많은 선거를 통해 참으로 기쁜 승리를 맛보기도 했지만 가슴 아픈 패배도 적지 않았다. 그 중 가장 쓰라린 경험은 내 자신이 직접 출마에 나섰던 지난 17대 총선이다. 인천 계양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쫄딱 망했다. 대통령 탄핵의 후폭풍이 워낙 거셌던 탓이다.
그래서 나는 출마를 결심한 후보들에게 가장 먼저 “잘못하면 패가망신하니 웬만하면 출마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최선을 다하되 낙선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패배의 아픔을 감당할 자신이 있을 때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후보는 선거 자체를 즐긴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천재보다 노력하자는 자가 우선이며, 노력하는 자보다 선거 자체를 즐기는 자가 더 우선이다. 고로 충고하노니 선거를 준비하는 지금의 과정이 즐겁기는커녕 골치만 지끈거린다면 당장 출마 결심을 접으시라. 차라리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돕는 편이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 현명하다.

대개의 정치컨설턴트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후보의 선거를 컨설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직접 후보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컨설턴트 중에서는 유일하지 싶다. 때문에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당선 노하우 99가지’를 써보려고 한다.
그 동안 99번의 선거를 경험하면서 선거관련 책들을 많이 구해 읽었지만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이론서는 많지만 지금 당장 후보와 참모들이 실전에 적용할만한 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정치 컨설팅 세계와 비교하면 모범적인 선거 사례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제대로 축적되지 못해 선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항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이 현실이 늘 안타까웠다.

제5회 동시지방선거는 2010년 6월 2일에 치러진다.
내년 2월 2일은 시도지사 예비후보 등록, 3월 21일은 기초단체장 및 지방의원 예비후보 등록이 이루어지며, 선거일 180일 전인 올해 12월 4일부터는 사전선거운동 단속이 시작된다. 다시 말해 올해 말부터 지방선거 분위기가 본격화되는 시기인 것이다. 하지만 2006년과 비교하면 선거준비는 매우 일찍부터 시작되고 있다. 지난 2006년도에는 선거일 1년 전부터 각종 교육이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1년 반 전인 올 상반기부터 각 정당이나 시․도당에서 지방자치아카데미 열풍이 불고 있다. 덕분에 전문가랍시고 이런저런 강의를 하고 다니지만 늘 부족함을 느낀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두어 시간의 강의로는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더 귀담아 듣고 미리 준비하려는 후보들의 의욕에 찬 눈동자를 보면 더욱 그렇다. 시간 제약 없이 들려주고 싶은 말을 모두 담아내서 후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이렇게 책까지 쓰게 되었다.

이 책은 ‘출마 전에 체크해야 될 포인트’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 기획, 홍보, 조직’, 그리고 ‘매니페스토’와 ‘온라인 선거’에 초점을 맞췄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예비후보 선거운동’과 13일간의 ‘법정선거운동’에 필요한 내용들은 또다른 책으로 묶어 올 하반기에 출간할 예정이다.
아울러 내 경험 역시 제한적이기에 후보들이나 참모들의 생생한 사례나 돋보이는 아이디어는 내 개인 블로그(nagaza.pe.kr))를 통해 서로 공유하기를 제안한다. 그것이야말로 개방, 공유, 참여를 통해 우리 선거문화를 웹 2.0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까.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PG communication에 감사를 드린다. 원고를 써놓고도 출판을 망설이던 내게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책이라며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기에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아울러 99번의 선거과정에서 당선의 기쁨과 낙선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던 많은 후보들과 참모들에게도 고맙다. 그들과의 애정 어린 교감 덕분에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특히 ‘낙선거사’임에도 불구하고 늘 사랑으로 감싸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해준 광주와 서천의 부모님, 그리고 아내와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도 진한 사랑을 전한다.

2009년 5월 정창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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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를 고민하는 예비후보자들에게.
 저는 지난 17대 총선에 출마해본 경험이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것입니다...

 밤이면 밤마다..
 고민이 많은 게 후보자의 심정이지요..
 냉정하게 자신을 체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출마 전에 체크 포인트 18가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미국 정치컨설턴트의 책을 참조해서 만든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하나 하나를 점검하고 체크해보면..
돈이 아니라 
아이디어로 승리하는 선거를 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 책인 '다음 칸은 희망입니다 2"에 있으니
 인터넷으로 주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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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마 전 체크 포인트 18
가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직출마와 승리에서 느끼는 흥분은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다.
공직출마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다.
출마여부는 독단적으로 판단하거나 단순한 정치적 야망에 따라서는 안 되고 주변사람들과 상의하여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만약 출마결심을 확고히 한 상태이더라도 공직에 나가려는 예비 후보자들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답답해한다.

 “18단계”는 출마하는 모든 후보에게 단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간단하고 실제적인 모범답안이 될 것이다.

결정적 순간마다 점검하라
.

이 단계들을 신중하게 따른다면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출마결심이야말로 선거의 절반이라 할 수 있다.

출마하지 않고 당선된 사람은 없다. 선거승리라는 최종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공직출마가 자신의 인생과 경력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봐라. 선거에 확신이 있고 정신적으로 굳건해야 선거에 뛰어들 수 있다. 단호한 출마결심이 없으면 동료나 자기편을 얻기가 힘들거나 거의 불가능하다.

출마결심을 최종적으로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이 있다. 출마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당선되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선거운동을 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있는지, 출마 시기는 적절한지, 승산이 있는 선거인지, 패배하더라도 감수할 수 있는지,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확고한 대답이 스스럼없이 나온다면 최종적인 출마결심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출마하는 이유를 30초 이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주요 메시지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전이라도 후보자가 왜 선거에 출마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명쾌하게 말할 수 있어야한다. 특히 50대 중졸학력의 주부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해야한다.


3. 가족을 먼저 설득하지 못하면 유권자를 설득할 수 없다.

정치는 가족을 힘들게 한다. 출마결심을 할 때 가족은 주요 고려사항이다. 가족은 정치현장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비난, 험담, 유언비어 등에 노출되어 고통을 받는다. 과연 가족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에 각오가 되어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 클린턴은 딸 ‘첼시’를 위해 대선출마를 4년 미루었다.


1988년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이 레이건의 부통령인 부시를 상대로 대선 후보로 나서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의 딸인 ‘첼시’때문이었다고 한다(하지만 클린턴은 4년 후 재선을 노리는 부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음). 선거전이 본격화되면 가족에 대한 흑색선전이 거세져 그 당시 7살이었던 첼시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클린턴과 힐러리는 걱정을 했다. 대선출마를 포기한 후 클린턴과 힐러리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식탁에 앉아 역할 연기를 했다. 누군가가 클린턴과 힐러리를 비난하는 역할을 맡았고, 그걸 바라본 첼시는 자신의 가족에 닥쳐올 위기를 미리 예감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4년 후 첼시는 클린턴이 대선에 출마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힐러리의 자서전에서)


4. 기존 업무를 정리해서 선거캠페인에 전념해야한다.

미납된 세금은 냈는가? 분쟁중인 소송은 있는가? 당신이 없어서는 안 되는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가? 나중에 문제가 되기 전에 미리 정리해라. 주변 일을 처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일찍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후보가 되면 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 다른 일을 도저히 못하게 할 정도로 선거캠페인은 엄청난 정신력과 체력을 요구한다. 선거출마는 분산되지 않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5. 선거법을 무시하다가는 출마조차 못 할 수 있다.

후보가 지켜야 할 선거법상의무는 많다. 따라서 법률전문가와 회계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소한 법적 문제가 가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에 출마한 어느 후보는 서류를 제때에 제출하지 않아 출마를 포기한 경우도 있다. 또한 선거법상 선거일전 180일부터 후보예정자나 그 가족 등은 금품, 음식물 등의 기부행위를 할 수 없는데 이를 위반하여 당선이 무효가 된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참고로 당내경선에서도 공천심사가 강화되어 과거 음주경력 등이 발각되어 후보자로 되지 못한 경우도 있다.


☞ 선거법에 소홀히 하여 출마조차 못한 사례

2005년 4월 30일 충남 아산 국회의원 재선거에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은 이명수 후보는 선거법상 절차를 무시하다가 출마조차 못했다. 그는 자민련 탈당선언을 하면서도 탈당계를 내지 않아 결국 자민련 당적이 그대로 유지되었고 이는 이중당적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선거법상 후보등록기간에는 당적을 바꿀 수 없다는 규정이 있고 자민련이 탈당 증명서를 끊어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는 출마를 포기하고 말았다.


6. 선거자금 계획을 마련해라.

돈이 없이는 시작도 할 수 없는 것이 선거캠페인의 현실이다. 선거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도 여론조사, 사무용품 등의 구입, 직원 고용 등의 준비를 위해서 일정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후보자 자신이 스스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최소한 필요하다. 스스로 자금을 마련하기 힘들면 가까운 친구, 친척, 사업 동료 등을 통해 구해야 할 것이다. 공식선거기간전이라도 후원회나 동문 등을 미리 관리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7. 전문가를 빨리 만날수록 선거승리는 더욱 가까워진다.

똑똑하고 경험 많은 후보일지라도 선거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세 가지 역할이 있다. 조사연구(여론조사 및 이슈․상대후보조사), 홍보,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갖추지 못한 전문 기술이기 때문이다.


8. 조직 내부용으로 사용할 자기소개서를 마련해라.

선거참모들은 후보의 성장과정, 가족의 삶, 집안의 내력, 학력, 종교, 인생관, 정치철학, 사회적 업적 등뿐만 아니라 후보의 약점, 집안의 비밀 등의 세세한 부분을 알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연극, 사회봉사 활동, 공무원으로서의 업적, 개인적인 가족 이야기, 친척이 들려준 재미있는 이야기 등을 추출해서 훌륭한 홍보자료를 만들 수 있다. 또한 후보의 약점 등을 미리 알아 상대후보의 공격에 대한 사전 준비와 대응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

조직 내부용으로 사용되는 ‘자기소개서’에 민감한 정보가 있다면 핵심참모를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자기소개서는 후보들 제각각의 삶의 내용에 따라 A4 크기로 5~20페이지 정도가 될 것이다. 가족사진, 액자, 졸업장, 상장 등이 자기소개서에 첨부될 필요도 있다.


9. 기초여론조사를 실시해라.

출마를 결정하기 전에 대부분의 후보들은 기초여론조사를 한다. 후보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알아야 출마할지 안할지를 결정할 수 있고 선거캠페인 전략과 메시지를 위한 로드맵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후보, 상대후보, 이슈에 대한 여론을 체크할 수 있고 메시지와 슬로건을 테스트할 수도 있다.


10. 출마 지역을 돌아다녀봐라.

선거캠페인이 시작되면 한가하게 선거구를 돌아다닐 시간은 없다. 출마선언하기 전에 지도를 들고 선거구를 샅샅이 돌아다녀라. 도로, 거리, 주택가, 상가, 공원, 운동장, 교회, 학교, 시장 등의 위치를 확인해라. 지도와 노트를 들고 수일동안 돌아다니면서 주민과 주요건물들에 대해서 관찰한 것을 기록해라. 여론조사와 인구학적 데이터에 사용가능한 생생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선거구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선거구 주민의 삶과 애환을 몸소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이는 생생한 메시지와 이슈를 개발하는데 잠재적 기반이 될 것이다.


11. 이슈에 대해서 공부해라.

모르면 표를 잃지만, 알면 표를 모은다. 처음 출마하는 후보들은 이슈에 대한 지식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출마하기 전에 지역현안이 되는 주요 이슈들에 대해 연구해야한다. 신문(특히 지역신문), 잡지, 연구보고서, TV, 라디오, 인터넷 등을 통해 이슈를 공부해라. 출마를 결심한 후 관련 자료를 들고 한적한 곳에서 일주일정도 휴가를 내고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학생처럼 공부해라. 각각의 이슈와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문서화해야할 것이다.


12. 수족이 될 수 있는 핵심참모진을 구축해라.

대부분의 선거캠페인에는 지역 내 사정을 꿰뚫고 있는 선거사무장을 비롯하여 수행, 스케줄관리, 기획, 회계, 홍보, 조직 등을 맡을 참모들이 필요하다.

선거사무장은 후보에게 충성심이 있고 정치, 행정 경험이 풍부한 자이어야 한다. 선거캠페인 전반을 총괄 지휘할 수 있는 리더십이 있어야 할 것이다. 수행비서의 가장 중요한 일은 운전하는 것이다. 많은 후보들이 자신이 직접 운전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옳은 생각이 아니다. 운전기사가 있음으로 해서 후보는 차안에서 사색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스케줄관리담당자는 후보의 일정을 책임지고 예정된 스케줄을 잘 조정할 수 있는 치밀하고 합리적인 성품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후보가 참석하는 모든 모임은 스케줄에 빠짐없이 기록되어야 한다. ‘후보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가? 왜 그를 만나는가? 언제 그곳에 가고, 언제 모임 또는 연설이 시작되고, 언제 그곳을 떠나는가? 후보는 무얼 가지고 가는가? 어디서 만나는가? 어떻게 그곳에 가는가?’ 등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내용이 스케줄에 포함되어야 한다. 회계책임자는 정직하면서 회계에 대한 실무적 지식과 경험이 있는 자이어야 한다. 기획참모에게는 치밀하고 창의적이고 전략적 계획을 잘 수립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13. 예비후보등록이전에 비공식적 사무실을 마련해라.

많은 후보자들이 자신의 집이나 사업체 사무실을 사용하여 경비를 절약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거캠페인을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가능한 한 사적인 공간과는 떨어져 선거를 준비하도록 해라.


14. 전략을 수립하는 핵심그룹(inner circle)을 만들어라.

최소한 3-4명에서 최대한 7-8명의 사람들로 구성된 핵심그룹을 만들어야 한다. 핵심그룹에는 후보자, 선거사무장, 여론조사전문가, 홍보담당자, 회계책임자 등의 핵심참모와 외부인사가 포함될 것이다. 핵심그룹은 정기적(ex.일주일단위로) 모임을 통해 전략기획회의를 하고 정책공약을 연구 개발하여 체계적인 선거준비를 마련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15. 메시지를 개발해라.

후보가 왜 출마하는지 그리고 유권자가 상대후보가 아닌 자신을 찍어야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유를 담은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 메시지는 상대후보와 차별화되는 당신의 진짜모습을 유권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16. 후보자의 ‘사진’과 ‘연설문’을 미리 준비해라.

후보의 멋진 사진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적 이미지와 명암처리에 대해서 잘 알고고 있는 전문 사진작가를 고용하여 최소한 5개 정도의 사진을 준비해놓아라. 느긋하고 편안하게 보이는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바쁜 선거캠페인 스케줄이 시작되기 전에 사진이 준비되도록 해야 한다. 살을 빼고 머리 스타일을 바꾸거나 다듬고 안경을 새로 살 필요가 있다면, 가능하면 사진을 찍기 전에 일찍 해라.

이슈와 메시지를 담은 연설문이 모든 후보에게는 필요하다. 연설의 주요요점은 정보카드위에 5~10개 정도의 핵심문장으로 적혀야한다. 당신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연설을 할지라도 요점을 가지고 있다면 도움이 된다. 짜임새 있는 연설을 할 수 있으면서 주요 문제점들을 전부 다룰 수 있고, 이미 한 말을 반복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17.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연락을 해라.

친구, 친척, 동문 등 주변 사람뿐만 아니라 지역유력인사(opinion leader), 직능단체, 종교단체, 시민단체 등을 망라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후원활동과 연계가 되도록 해야 한다.


18. 공식적 출마선언을 해라.

예비후보등록이전이더라도 출마선언을 할 수 있다. 의례적 절차이지만 지역 언론에 당신을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출마선언에는 메시지를 담아야한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출마선언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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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출마 전에 18가지 포인트를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하는..
선거캠페인을 기획해야 합니다...

후보자가 즐기는 선거를 위해서...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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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컨설턴트가 바라본 여의도 이야기



+ 성 명 : 양승오
+ 직 업 : 정치 컨설턴트
+ 회사명 : 더브릿지
+ 블로그 : http://critica.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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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인연을 맺다

대학원을 마치고 당시 서울시장 출마 했던 김민석 후보 선거 캠프에서 아르바이트 맡게 되면서 정치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 시절 선거 캠페인이라고 한다면 현장유세 정도나 생각할 때였다.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던 내게 들어온 선배의 일거리는 새로 도입된 TV토론회 기획 업무였다. TV토론은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쉴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2002년 이 시기에 기획을 짜라고 맡겨졌을 때 대학원을 막 졸업하고 나온 제게 익숙했던 방식은 정확한 자료와 분석을 통한 결과물을 원했고 당연했다. 기획을 한다면 관련 자료를 살펴봐야 하고 설문조사를 해야 하는데 기존에 참고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었다. 정치현장에 이루어지는 기획이란 오래 동안 몸담아 오면서 체득한 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에 의해서 기획하고 있어 조금 황당함을 느꼈다. 사회 분위기가 정치라고 하면 안 믿는 풍조가 있었고 정치 분야에서의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자료를 믿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기획에 있어 그나마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선거 방식이라는 것은 여론조사를 참고해 전략을 짜는 것이 전부였다.

TV토론회가 활성화 되고 미디어 정치를 처음 시작하는 상황에서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해 봐야 할 필요가 있을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정치현장에서 몸담아 오면서 경험에 의한 감이라는 것을 무시할 순 없는 이야기다. 다만 미디어 라는 것은 대중적 성격의 속성이 강한 부분이고 어떻게 보면 ‘대중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어떻게 보이느냐 따라 표심이 좌우 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을 개인적인 감으로 전략을 짠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에서 나름대로의 지론을 바탕으로 과학적인 방식을 그리고 가장 빨리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을 착안한 기획을 실천에 옮겼다. 표본을 샘플링 하여 설문을 실시했다. 일종의 포커싱 인터뷰를 시도해 참고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 통계적이고 과학적인 국민의 의견이 반영한 기획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인 것 같다. 정치와 관련한 일을 시작하면서 인정을 받고 정치 컨설턴트의 길로 이끈 첫 발을 내딛 직무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크리티카 님의 블로그는 어떤 공간인가요?

정치 내용이 담긴 정치 블로그 이다. 개인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한지 1년 정도 오래되진 않았다. 정치 컨설턴트라는 직업적 사명을 갖고 사회적인 아웃사이더이면서 진정성을 지닌 우리 정치에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은 어디 있을까 고민하던 중 턱 하니 잡힌 것이 블로그였다. 블로그 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혼자 열심히 말하고 있는 블로거를 보았다. 작지만 힘있는 목소리였다. 재미있다고 느꼈고 동시에 맞는 말을 하고 있었다. 다른 소수의 의견보다 진정성과 열정에 있어 한 블로거의 목소리는 뒤지지 않았다.

블로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인터넷을 통해 벌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을 경험하며 현재의 블로그와 정치 메타블로그 사이트 ‘블로그1219’(http://blog1219.net)를 운영하게 됐다. 작은 목소리도 귀 담아 들을 수 있는 정치, 열린 정치를 보좌하기 위한 컨설턴트로서 블로그의 발견은 또 다른 의미이다. 블로깅은 꿈꾸던 정치를 실현 시킬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블로깅을 통해 정치에 부담 없이 자유롭고 쉬운 정치 참여가 이뤄졌음 한다.


웹2.0시대 국회는 1.0도 안돼

블로그는 웹2.0시대 중요한 패러다임이다. 여의도를 봤을 때 정치권은 웹1.0도 안되어있다고 본다. 제가 판단했을 땐 여의도는 웹 0.5 수준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치가 폄하적 반응이 나오는 것은 결국 국민들한테 다가가는 순간이 적었기 때문이다. 선거기간에만 반짝하는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달갑지 않고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의 이유에서 정치 커뮤니케이션은 웹0.5 수준에 불과하다. 컨설팅 하는 입장에선 참 안타깝다. 정치가 생활과 밀접하게 그것을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편리하게 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일까 제가 봤을 때는 그것이 블로그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치인도 블로그를 해야 하고 블로그 글의 댓글이나 트랙백 반응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싶은 사람도 블로그를 통해 서로 만나는 공간으로서 블로그는 중요하겠다.



블로그와 정치는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나요?

인터넷 공간에서 정치 블로그 또는 정치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행위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공감한다. 그 가운데 블로그가 가지고 있는 자체 툴(tool)의 특성도 굉장히 적절하고 그 이용자인 블로거들의 사고방식과 생활패턴 이러한 것들이 대한민국의 미래 정치에서 장차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이 블로거 라고 생각한다.

몇 바이트 밖에 안 되는 블로그에서 희망을 봤다. 올해 2007년 대선은 블로그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참여 정부가 갖는 있는 문제점이라면 소통의 부재를 뽑을 수 있다. 웹2.0시대 공유, 개방, 참여가 화두에 오른 현시점에서 정부가 진행하는 온라인 채널에는 한계가 있고 제한적이다. 2002년 이전에는 민감한 내용을 풀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인터넷 게시판, ‘노사모’ 게시판이 새로운 공론장으로서 한국 정치에 문화가 된 바 있다. 앞으로 정책적인 내용이 인터넷공간에서 많이 다뤄졌으면 한다. 블로그스피어 인터넷공간에서 스스로 혼자 떠들고 있는 블로거 목소리에서 진실을 발견했다.

열린 시민사회 정치 참여, 실질적인 정책 내용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려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책 공론장’으로서 블로그스피어가 활성화 되려면 두 가지가 있다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첫째, 개인의 작은 소리 하나라도 정책 하는 관련 기관이나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 다른 하나는 블로그스피어에서 소중한 목소리, 의견에 대해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존경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트랙백’ 기능에 놀라다

인터넷 게시판 공간은 자신만의 공간이 아니다. 각 정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접속해 심혈을 기우려 쓰던 대충 욕을 하던 공개된 커뮤니티에 타인에게 불특정 하게 메시지를 돌리는 공간이다. 한편 블로그를 봤더니 블로그 공간은 자신의 글을 진지하게 보여줄 수 있는 편안함이 있고 또한 ‘트랙백’이란 기능을 활용하면 원하는 글을 선택적으로 받아 볼 수 있었다. ‘트랙백’ 기능은 온라인 정치시대 진일보적인 참여방식이 아닌가 싶다. 소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청렴한 정치인에게 손잡아 줄 도구적 장치로서 ‘트랙백’을 높이 평가하고 기대되는 웹2.0 기반의 기술적 특징이다.



‘블로그 세계’는 공평 하다고 생각하세요?

블로그의 글은 성실성과 신뢰도 라고 생각한다. 블로그 만큼이나 민주적이고 참여가 열성적인 사람 집단은 없다. 또한 애정이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공개를 안하고 사용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블로거는 제가 봤을 때 자기를 표출하고 싶어한다. ‘블로그나라’의 법칙은 공평하다. 온라인상에서 명예를 획득해서 오프라인상에서 명예를 얻을 수 없는 욕구를 온라인상에서 대리만족 시켜준다. 온라인의 매력은 오프라인상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기회가 균등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온라인상에서는 자신을 표출하고 노력한 만큼 그 명예가 획득된다.



‘정치 컨설턴트’를 소개합니다

‘정치 컨설턴트’는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는 에이전시 역할을 담당한다. 직업군에는 정치 컨설팅이란 분류는 없다. 컨설팅이라는 개념은 정치 분야도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개념을 최근에 세운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성장하고 있다. 정치환경에 큰 변화가 오면서부터 선거 캠페인 전반을 총괄하고 평소 정책운영을 보좌하는 ‘정치 컨설턴트’의 역할이 생겨난 것이다.

정치환경의 큰 변화의 물결 가운데 미디어가 다양해졌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기존의 선거 캠페인에서 사용된 홍보물은 인쇄물 하나였다. 오늘날 매체가 다양해진 가운데 인쇄물의 종류와 방법이 차별되고 인터넷이라는 강력하고 항상 홍보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이렇게 알릴 수 있는 홍보 수단이 다양해지다 보니 단순하게 선거라는 게 홍보물 하나로만 해선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어떻게 운영하고 어떤 전략을 쓸 것인가. 전문적이고도 총체적 역할의 컨설턴트가 필요해졌다.



정치 컨설턴트는 어떤 업무를 하나요?

가장 일이 많을 때는 선거 캠페인 기간이다. 정치 컨설턴트의 업무는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며 어떻게 할 것인가 기획, 전략을 수립하는 컨설팅을 담당한다. 선거가 없는 기간에는 정당이나 정치 관련 단체에 정책 활동에 대한 조언과 법안 및 홍보를 통해 고객 조직을 관리한다.



현업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커리어를 갖고 있나요?

현업에 있는 사람들은 정치 광고를 진행한 경력자들이다. 미디어정치, 대중 정치가 활발해지면서 전략과 기획 능력을 갖춘 전문가가 필요하게 됐고 단순히 홍보물에 카피라이터 역할을 해오던 수준에 벗어나 구체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어떻게 유권자들에게 전달 할지 고민하고 또 적절한 대처 방안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는 확장된 개념으로서 캠페인 조언자로 성장했다.



정치 컨설팅 회사에 대해 궁금합니다

국내에서 정치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곳은 4~5군데 유명한 곳이 있다. 아직까진 정치 컨설팅이라고 하지 않고 정치광고 회사로 알려져 있다.

컨설팅이라는 차원은 기존 캠페인 광고 수수료 방식에서는 정치 선거 광고를 진행하면서 서비스 차원에서 해줬던 일이었다. 아직까진 컨설팅 상담료 개념이 약한 실정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정책 홍보에 있어 제작물은 전문적인 컨설팅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여도 크리에이티브한 홍보제작 업체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보다는 컨설팅 기획과 내용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콘텐츠 생산에 초점을 맞춰 비즈니스 전반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앞으로 국내시장에서 주요하다고 본다.

지금 몇몇 사람들이 ‘정치 컨설턴트’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있다. 국외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정치 컨설턴트 협회가 존재하고 가입을 해야 로비스트로서 선거 운영 활동을 할 수 있다. 등록제로 이루어진 에이전시 활동은 정책 입안자나 입법 추진 의원들이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정책 결정을 하게끔 설득하는 ‘로비스트’의 영향력이 실제로 크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성장하고 있는 정치 분야의 새로운 직업 군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겠다. 작년 한해 온라인정치의 영향을 확인한 한국정치는 웹2.0의 공유, 개방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다고 본다. 도전적이고 활발한 정치 활동은 해외에서와 같이 활발한 정치 활동가로서 ‘정치 컨설턴트’가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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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한국에 소개된 정치컨설턴트 기사에..
제이름이 나왔네요..


[커버 · 전치 컨설턴트] 대선 지략싸움 "우리 손에 달렸소"

대선을 불과 8개월여 앞둔 요즘 정치권에서는 유력 대선주자 캠프에 속한 S씨의 행보가 화제다. 지난 2월 설날 즈음에 S씨가 미국을 방문, 선거의 귀재라는 딕 모리스를 만나 대선승리를 위한 자문을 요청했다는 뒷얘기다.
딕 모리스는 미국 아칸소주 법무장관이었던 빌 클린턴을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시켰고, 1996년 클린턴이 재선할 때 선거총책임자였으며, 2004년 당선된 폭스 멕시코 대통령의 선거도 지휘한 세계적 정치 컨설턴트. 지난 2002년 우리나라의 대선 때도 각 진영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다른 대선캠프에서도 미국의 저명한 선거전략가를 물색하고 있는가 하면 국내 정치 컨설턴트와 계약, 대선레이스의 전략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아직 우리나라엔 낯선 정치 컨설턴트가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정치 컨설턴트는 선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캠프를 총괄하는 ‘선거의 코디네이터’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선거전략 수립 ▲리서치 ▲홍보(PR) ▲이미지 컨설팅 ▲선거소품 지원 등으로 나뉜다.

각종 선거에서 정치 컨설턴트의 위력은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92년 미국의 민주당 빌 클린턴과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 간의 대선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조지 부시는 80년대 말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구 소련 해체에다 90년 걸프전쟁의 승리로 지지율이 무려 90%대에 달해 당선이 확실시됐다.

그러나 그런 장밋빛 꿈은 빌 클린턴 진영의 “문제는 경제다, 멍청아(It’s th 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동서 냉전이 자본주의의 승리로 사실상 막을 내린 90년대부터 경제문제가 국내 정치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임을 정확하게 끄집어낸 결과였다. 결국 클린턴 캠프의 선거전략이 적중해 승리했고 그 배후에는 제임스 카빌, 폴 베갈라라는 베테랑 정치 컨설턴트가 있었다.

지난해 5ㆍ31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였던 대전시장 선거에서도 ‘고수’ 정치 컨설턴트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열린우리당 염홍철 대전시장과 한나라당 박성효 전 대전시 정무부시장 간의 대결은 초기 각종 여론조사 결과 염 시장이 압도적으로 높아 그의 완승이 예상됐다.

그러나 정치 컨설턴트인 전병민(한국정책연구원 고문) 씨가 박 후보 편에서 선거전략을 구사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전 씨는 노태우ㆍ김영삼 정부가 탄생할 때 선거기획에 참여한 적이 있는,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정치 컨설턴트 선구자다

전 씨는 초반 선거전략을 염 후보에 대한 검증작업에 초점을 맞춘 뒤 다음 수순으로 대전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인 강창희 한나라당 시당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워 선거구도를 ‘염홍철 후보 대 강창희 위원장’의 구도로 바꿔놓아 무명에 가까운 박 후보의 지지율을 수직상승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박근혜 대표가 대전에 내려와서 부동표를 흡수해 가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예기치 않은 박 대표의 ‘면도칼 피습 사건’이 발생하면서 부동표 흡수가 빠르게 진행돼 결국 박성효 후보가 43.8%를 득표, 줄곧 우세를 보여왔던 염홍철 후보(41.1%)를 이기는 기적 같은 역전극을 연출했다.

이처럼 선거에서 정치 컨설턴트의 중요성이 높아가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고객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

60년대 박정희 정권의 관권선거에 맞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도운 엄창록(1988년 작고) 씨가 ‘선거의 귀재’로 불렸지만 현대적 의미의 정치 컨설턴트는 1987년 대통령선거와 89년 13대 총선 때부터 본격 등장한 정치광고회사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 정치마케팅을 처음 펼친 주역은 ‘파이론’의 최병윤 사장이다. 최 사장은 1988년 재야운동단체인 민주화추진협의회의 지원으로 미국의 정치광고전문회사인 ‘퍼스트 튜즈데이’에 가서 선진선거법을 익혀와 89년 우리 실정에 맞게 접목을 시도했다.

이후 최 사장은 92년 14대 총선 때 황인성 전 국무총리, 국민회의 김상현 지도위원회 의장, 서청원 정무장관 등을 당선시켰고 그해 6월 보궐선거에서는 신한국당 손학규 대변인이 금배지를 다는데 기여했다.

김승용 사장이 1988년 설립한 ‘연우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정치광고 기획사도 정치 컨설팅 분야에서 주목을 받았다. 2005년 10ㆍ26 재선거 때 경기 광주의 홍사덕 전 한나라당 의원과 정진섭 한나라당 후보 대결에서 정 후보 측 선거전략을 맡아 승리를 이끌었다.

열린우리당 김교흥 의원(인천 서구ㆍ강화갑)이 91년 설립한 ‘A&T 기획’은 그해 6ㆍ27 선거 때 전재회 광명시장(현 한나라당 의원)을, 14대 총선 때는 박계동 의원, 김종호 의원 등을 당선시켰다. 김 의원은 “전재희 시장의 경우 ‘여성 시장’을 내세우기보다 ‘시장으로서의 능력’을 강조한 것이 주효했다”고 회고했다.

그밖에 하나애드컴(대표 이종하), 두홍기획(대표 송민호), 한국홍보컨설팅(대표 최선유) 등이 정치광고 및 후보들의 선거관리 컨설팅을 했으며, 노무현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 운영하는 지방자치연구소는 부설기관으로 ‘6ㆍ27선거정보센터(소장 배갑상)’를 94년 10월 개설해 선거 컨설팅 업무를 시작했다.

한편 1991년에 설립한 김능구(47) 대표의 ‘서울기획’(6ㆍ27 선거 때 윈컴으로 개명, 현 e-윈컴)과 박성민 대표의 정치컨설팅그룹 ‘민’은 출발부터 정치 컨설팅을 전면에 내세웠다. 현재 ‘e-윈컴’과 ‘민’은 국내 대표적인 정치 컨설팅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김 대표는 “정치 컨설팅에 대한 수수료를 받아왔고 홍보물 제작은 부가 서비스로 해줬다”고 했고, 박 대표는 “다른 회사가 정치광고를 내세울 때 우리는 정치 컨설팅 전문이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정치 컨설팅과 일반 정치광고는 분명히 다르다”고 말한다. 정치 컨설팅이 후보의 홍보, 이미지 만들기, 정책 조언 등을 포괄하는 선거 기획과 전략을 뜻하는 반면 정치 광고는 주로 후보의 홍보물 제작이라는 협소한 의미로 쓰인다는 것.

정치 컨설턴트가 하는 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의뢰인인 후보자의 ‘당선’이다. 이를 위해 선거캠프를 총괄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거전략, 미디어ㆍPR, 캠페인프로모션 등으로 구분해 파트별로 한정된 일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객과의 계약을 맺는 시기에 따라 컨설턴트의 일이 달라지기도 한다. 지자체선거나 총선,또는 대선에 따라 선거전략은 물론, 정책, 홍보, 심지어 방송에서의 외모, 발음까지 개입하는 방식과 범위가 다르다. 정치 컨설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신뢰다. 일단 계약이 성립하면 고객은 컨설턴트에게 많은 권한을 주면서 의존하게 되고 컨설턴트는 고객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김능구 대표는 15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경기 의왕ㆍ과천)을 컨설팅한 적이 있다. 당시 상대는 열린우리당 김부겸 의원. 김 대표는 안 의원이 1987년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 사건의 주임검사인 점을 감안 ‘낡은 정치에 마침표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지역민들이 중산층 이상이라는 것을 고려해 개혁적이고 신선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안 의원 참모들은 김 후보의 운동권 경력에 초점을 맞춰 ‘색깔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반발했다. 김 사장은 “핵심 전략이 바뀌면 모든 게 무너진다”며 버텼고 고민하던 안 의원은 선거의 주요 권한을 김 사장에게 일임했다. 결국 안 의원은 당선됐고 현재 3선의 중진 의원이다.

여론조사 전문가, 학계, 정당인 출신, 정치 평론가 들 중에 정치 컨설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 컨설턴트와 구별된다. 이른바 ‘폴스터’(Pollster)는 여론조사 전문가이면서 정치 컨설팅을 하는 이들로 대개 고객이 선거에 나설지 여부와 여론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어느 지역에 어느 당으로 출마할 것인가를 코치한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은 “조사 결과는 정치 흐름과 여론을 반영하기 때문에 컨설팅 기능을 동반하기 마련인데 여론조사를 기초로 후보자에게 지역구 상황 판단, 공약, 후보자 이미지 포지셔닝 등 기본 방향을 잡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안부근 디오피니언 소장, 노규형 리서치앤리서치 대표,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이사 등이 폴스터에 가깝다.

학계에선 김형준(국민대)ㆍ안병진(경희대사이버대) 교수, 정당인 출신으론 정창교 KSOI 수석전문위원, 윤여준ㆍ장성민 전 의원, 정치평론가 중엔 유창선 박사, 그밖에 김윤재 변호사 등이 정치 컨설팅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현실 아직 초보단계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정치 컨설턴트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지만 국내 현실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제대로 된 정치 컨설턴트가 드물고 선거 때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사라지는 정치광고 기획사들만이 활개를 친다. 게다가 현행 선거법은 정치 컨설트들이 더 많은 정치 자문료를 받고 활동하는 것을 제약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성민 대표는 “올해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거치면 정치 컨설트의 영향력이 커지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서면 정치 마케팅이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 산업이 될 수 있다”며 낙관론을 폈다.

오는 12월 대선을 계기로 정치 컨설턴트의 좌표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 한국 대선과 미국 정치 컨설턴트
오는 12월 대선에 미국 정치 컨설턴트의 입김이 미칠까. 그동안 한국 대선에 미국 정치컨설턴트의 개입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1987년 대선에는 84년 레이건 전 대통령 재선 캠페인매니저였던 에드 롤린스가 노태우 후보 전략 자문을 맡았고, 92년 김영삼 후보의 선거 진영에도 워싱턴 유수의 홍보 컨설팅 회사들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97년 대선에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에서는 96년 클린턴 여론조사를 담당했던 펜션(Penn+Schon)의 파트너 덕션(Douglas Schon)팀을 영입했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측에서는 데이비드 모리가 홍보전략을 자문하고 스티븐 코스텔로가 대미 업무를 전담한 바 있다.

2002년 대선 때는 빌 클린턴을 영웅으로 만든 선거 귀재 딕 모리스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야 후보 진영과 정몽준 의원 측도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선과 관련 일부 대선주자 측에서 딕 모리스를 비롯해 미국의 정치 컨설턴트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대해 국내의 한 정치 컨설턴트는 “선거문화가 다른데 맹목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라며 “오히려 국내 전문가들이 대선을 더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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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뉴' 머리와 손발 제각각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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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김당 구영식 장윤선 전관석 기자

1987년 진보세력이 있던 자리에... 1987년 7월 9일 시청 앞에서 열린 이한열 장례식.
ⓒ 연합뉴스

2004년에는 보수집회가... 개신교내 보수단체인 한기총과 극우단체인 반핵반김국민협의회가 주최하는 '대한민국수호 국민대회'가 2004년 10월 4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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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민주항쟁의 서막은 건국 이후 최초로 야당과 재야 민주단체가 힘을 합친 반독재·범민주연합전선 조직인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하 국민운동본부)'의 독재정권에 대한 '맞장뜨기'로 시작했다.

6월 10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자신의 후계자인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권력 이양절차에 맞춰 후계자의 애창곡 '베사메무초'가 울려퍼진 그 시각, 덕수궁 옆 성공회대성당 종루에서는 비장한 종소리가 42번 울렸다.

해방 이후 42년, 분단과 독재의 사슬을 끊고 민주주의의 새 날을 열자는 희망을 담은 종소리와 함께 스피커에서는 국민운동본부 인명진 대변인의 단호하고 비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삽화 ①] 1987년 6월 민주항쟁 :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오늘 우리는 전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40년 독재정치를 청산하고 희망찬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거보를 전 국민과 함께 내딛는다. 국가의 미래요 소망인 꽃다운 젊은이를 야만적인 고문으로 죽여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뻔뻔스럽게 국민을 속이려 했던 현정권에게 국민의 분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국민적 여망인 개헌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4·13 폭거를 철회시키기 위한 민주장정을 시작한다."

▲ 1987년 명동성당. 6월 항쟁이 한창이던 때 계성여고생들이 농성자들에게 도시락을 건네며 힘을 보탰다.
ⓒ 성공회신학대
'6월 민주항쟁'의 시작을 알린 이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도시에서 24만여 명(국민운동본부 집계, 경찰 발표는 1만8500명)이 참여한 가운데 '6·10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열렸다.

이에 앞서 국민운동본부는 "8~9일 전국민은 6·10 국민대회 참여를 권유하고 상호 격려하는 '전국민 전화걸기 운동'을 전개한다"는 행동강령을 발표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와 인터넷은 물론 PC통신도 없던 시절이었다.

6·10 국민대회의 의의는 이날 성공회대성당 주변에 뿌려진 '민주헌법 쟁취하여 민주정부 수립하자'는 제목의 유인물과 전국 22개 도시에서 울려퍼진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에 잘 축약돼 있다. '호헌철폐'를 통해 '민주헌법을 쟁취'하고, 직접선거에 의한 민주정부 수립으로 독재를 타도하자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87년 당시 재야의 구심점이었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의 주도하에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등 25개 가맹단체, 천주교, 개신교, 통일민주당,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재야 민주인사 등 2196명을 발기인으로 해 결성된 국민운동본부가 있었다.

비록 '낮은 수준의 연대'였지만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반독재 연합전선을 구축함으로써 6월 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국민운동본부는 대선을 치르는 87년 권력이양기를 맞이해 독재정권에 총공세를 가했고, 대통령 직선제라는 합법적인 권력경쟁의 공간을 쟁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합법적 절차의 확보를 통한 권력 경쟁의 결과는 민주화 세력의 분열과 권위주의 세력의 권력 연장이었다. 호헌철폐는 달성했지만 민주정부 수립에는 이르지 못한 '절반의 성공'이었다. 정통 야당과 재야 민주화 세력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97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선거에 의한 민주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채 안 된 지금, 민주화세력에게 권력을 빼앗긴 보수우파는 진보좌파 혹은 민주개혁세력의 활동공간이었던 '광장'과 '아지트', 그리고 '온라인'에서 '권불십년'(權不十年)을 외치며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한 절치부심의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삽화 ②] 2004년 10·4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 :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피와 땀으로 지키고 가꾸어온 대한민국의 안보가 지금 중대한 위협에 처해 있다. 한반도 적화통일을 획책하고 있는 북한의 공산 군사독재 집단과 이를 추종하는 남한의 친북공산 세력이 합세하여 국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고 총공세를 전개하고 있다."

▲ 지난 2004년 10월 4일 '대한민국수호 국민대회'.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2004년 10월 보수우파의 총궐기를 예고하는 '10·4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의 대국민 결의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수천명, 수만명 단위로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시위는 이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국민대회에 30만여명(주최측 자체 집계, 경찰 추산은 10만명)의 시민이 참여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애국시민 30만명의 10·4 의거'라고 부른 이 날 행사를 주도한 것은 300여개 보수우익 단체가 참여한 '반핵반김 국민협의회'(이하 국민협의회)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중 동원의 중심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재향군인회 그리고 150여개의 참여·후원단체로 구성된 친북좌익 척결 국민행동본부(이하 국민행동본부)가 있었다.

이에 앞서 '국민협의회'와 '국민행동본부'는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를 알리는 신문광고를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4회씩 내면서 참여를 유도했다.

이들은 신문광고에서 "권력의 불법 강행에 대해서는 국민저항권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 "가족단위로, 직장단위로, 마을단위로, 친구끼리, 동향·동업·동창·동기들도, 전문집단도, 택시기사도, 시장상인들도, 서울도, 지방도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모이자"고 행동강령을 발표했다. 특히 한기총은 교회주보와 예배 중 광고를 통해, 국민행동본부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참여를 독려했다.

보수우파는 기동성 있는 대중 동원으로 '광장'을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법적 대응과 이론 무장에서도 진보좌파에 대한 발빠른 '벤치마킹'으로 오히려 진보좌파보다 더 빠르게 '진보'했다.

국민협의회는 국민대회 직후 변호인단을 모집했고, '10·4 의거'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얻어맞아 다친 사람들의 신고를 받아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한편으로는 '이론무장을 위한 대강연회'를 개최했다.

광장과 아지트 그리고 온라인까지 잠식한 보수우파

1987년과 2007년 대선의 정치 지형 비교

연도

주도세력

주관 단체(핵심단체)

구호

목표

1987년

진보좌파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민통련)

호헌철폐, 독재타도

민주정부 수립

2007년

보수우파

반핵반김국민협의회(국민행동본부)

'4대 악법' 저지

좌파정권 종식

ⓒ 고정미

흥행에 성공한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로 자신감을 얻은 보수우파는 '4대 악법 저지 전국민 궐기대회'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투쟁'을 통해 해마다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

특히 보수우파의 '선전선동대' 역할을 맡고 있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과거 민주화 운동권이 그랬던 것처럼 정기적으로 <국민교재>라는 보수우파 '의식화 교재'를 만들어 보수우파의 의견을 전파하며 우파의 체력을 담금질하고 있다.

어느덧 이들의 위세는 서울 광화문과 시청 그리고 서울역의 '광장'만 접수한 것이 아니라 진보의 아지트였던 인터넷 공간마저 위협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인터넷 공간은 진보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2004년 초를 기점으로 보수성향의 인터넷 매체들이 우후죽순 만들어지기 시작하더니 <독립신문> <미래한국신문> <데일리안> 등에 이어 <뉴데일리> <프런티어 타임스> <폴리뉴스> <브레이크뉴스> <데일리NK > <프리존> <코나스>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보수 인터넷매체의 시장 점유율은 진보 인터넷매체보다 뒤지지만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와 한나라당의 상승세 흐름을 타고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2002년 대선 국면의 온라인 세상을 '노사모'가 지배했다면, 2006년의 온라인 세상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장악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조갑제씨가 운영하는 '조갑제닷컴'이 '감별'한 '애국단체 주소모음' 리스트에 따르면, 현재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공동목표를 지지하는 '애국단체'는 무려 443개나 된다. 20년이라는 시간적 차이는 있지만, 87년 6월 민주항쟁을 주도했던 국민운동본부의 가맹단체가 25개였던 데 비하면 18곱절이나 늘어난 수치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가운데 상당수는 '허수'이거나 '겹치기 출연'으로 중복된 경우다. 이를테면 한 때 300여개에 달했던 국민협의회의 참여단체는 2006년 12월 현재 71개 정도로 줄었다. 그 대신 지난 2005년 6월에 '자유민주비상국민회의'(이하 비상국민회의)가 출범했다고 하지만, 국민협의회와 함께 한국 보수진영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는 비상국민회의는 막상 독자적인 홈페이지조차 갖고 있지 않다.

보수우파 세력이 힘은 전보다 세졌지만 여전히 '질(콘텐츠)'보다는 '양(외형)'에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 대부분이 '군 동기회'이거나 유명무실한 단체들이지만 그나마 일정한 '대오'를 유지한 채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합단체는 148개 후원·참여단체를 둔 '국민행동본부'이다.

▲ 2004년초를 기점으로 보수 성향의 인터넷 매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왼쪽부터 <조갑제닷컴> <독립신문> <뉴데일리>.

행동하는 보수, 머리 쓰는 보수

이처럼 보수가 커 보이는 것은 조직화된 탓이 크다.

정창교 정치컨설턴트는 "김대중 정부에서 반기를 들었던 보수세력이 노무현 정부 들어서 광화문 4거리에서 최초로 대규모 대중집회를 개최한 이후 반정부 집회시위가 일상화·대중화되는 등 조직화됨으로써 목소리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민행동본부와 재향군인회, 한기총 등은 '행동하는 보수'임을 자임한다. 이들이 보수진영의 '손발' 구실을 한다면, 이들 '올드라이트'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뉴라이트' 계열은 보수우파의 부족한 콘텐츠를 채워주는 '머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행동'보다는 이론 전개와 서명운동 등 '머리'를 쓰는 이들은 대부분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처럼 '386 운동권'이었거나 김진홍(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서경석(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 목사처럼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자유민주비상국민회의 창립을 주도하고 현재도 한미우호협회 회장, <미래한국신문> 편집인,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장 같은 보수단체 감투를 두루 쓰고 있는 '올드라이트' 김상철 변호사는 87년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이었다.

진보에서 보수로의 '전향'은 정치권이 시민사회보다 더 재빨랐다. 민통련 탄압의 빌미를 제공한 86년 5·3 인천사태의 주동인물이었던 김문수씨와 민통련의 이재오씨는 각각 경기도지사와 최고위원으로 한나라당의 핵심 인물이 되었으며, 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이었던 인명진 목사는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으로 가서 한나라당의 내년 대선 집권을 돕고 있다.

뉴라이트의 출현은 보수의 정당성과 이론화를 뒷받침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정치권에서 보수의 '수구꼴통' 이미지를 퇴색케 하고 상대적으로 '낡은 진보'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이중효과를 낳고 있다.

'단일대오' 없는 보수, 잃어버린 권력 찾을까

▲ 지난 2005년 11월 열린 '뉴라이트 전국연합(상임의장 김진홍 목사) 창립대회'. 연합의 지역·직능 대표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우파는 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야당과 재야세력이 함께 국민운동본부 같은 '단일대오'를 갖춘 연합전선 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셈이다.

실제로 올드라이트는 뉴라이트를 여전히 '빨갱이' 취급하고 있으며 뉴라이트는 올드라이트를 '꼴통보수'로 간주하고 있다. 심지어 올드라이트 내부에서조차도 서로의 반목으로 단일대오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 87년 당시 양김(김대중·김영삼)의 분열로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 실패했듯, 내년 대선에서 양박(이명박·박근혜)의 분열로 '좌파정권' 종식에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경보수파인 김용갑 의원의 징계를 둘러싼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의 갈등과 '양박'의 대리전 양상은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과연 보수우파는 내년 대선에서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에 <오마이뉴스>는 기획 '보수 대해부' 3부작을 연재한다. 1부는 보수 인맥지도, 2부는 보수 대논쟁, 3부는 집권 가능성을 다룰 예정이다. 우선 1부에서는 각 그룹별로 보수단체의 결성 배경과 인맥 그리고 지향점 등을 집중 해부한다. 1부에서 다룰 보수단체는 편의상 ▲뉴라이트 계열 ▲예비역 군인 모임 ▲보수 기독교 단체 ▲청년·대학생 그룹 ▲지식인 그룹 ▲반북 단체 ▲교육단체 ▲보수 언론 등으로 나누어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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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가자

선거는 과학입니다

‘선거는 과학이다’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미국의 ‘죠셉 나폴리탄(Joseph Napolitan)'입니다.
정치컨설턴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는 1968년 미국식 선거 기획으로 프랑스에서 후보자를 당선시키면서 처음으로 ‘국제정치컨설턴트협회’를 창립한 이후 수많은 선거 경험을 통해 ‘후보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신속하게 더 많은 유권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습니다. 그는 나라마다 선거문화가 다르지만, 선거캠페인의 목적은 오직 하나 - 유권자가 상대후보가 아닌 자기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설득하는 것 - 이며, 이를 위한 과학적인 원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의 직업을 물어보면 저는 ‘정치컨설턴트’라고 대답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아직 ‘정치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생소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정치컨설턴트 협회에 등록한 사람이 7천여 명에 이르며, 가장 유망한 직종 중의 하나입니다. 예를 들면 클린턴 대통령을 만든 딕 모리스나, 아들 조지 부시를 대통령의 만든 칼 로브 같은 사람은 미국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정치컨설턴트입니다.
대한민국에도 이제 ‘정치컨설턴트’라는 직종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금융이나 기업컨설팅이 이제는 우리사회에 보편화되듯이 정치컨설팅도 유망 직업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정치와 선거에 뛰어든 것은 인천지역에서 택시노조 사무국장을 하던 중 인천광역시의원 선거사무장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던 택시 기사출신의 우리 후보자가 조직과 재력이 막강했던 상대후보를 크게 이긴 경험이 저를 정치컨설팅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지요. 그 후 각종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대선 캠프에서 기획책임자로 활동을 했고, 지난 17대 총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 정세분석국장 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당시 선거에서 당연히 낙선했지만, 저에게는 후보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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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sonic | SV-AV20 | No Flash | 2004:04:13 16:24:14

17대 총선 기호2번 계양 뽀빠이 정창교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부터 ‘선거 이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이 원고는 지난 지방선거 때 “웰컴투 표밭골 - 선거 노하우 99가지”라는 제목으로 썼던 초안입니다. 당시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 제 블로그에 공개하고 책으로 내지는 못했습니다.
돈과 조직 중심의 아날로그 선거에서 자질과 비전 중심의 디지털 선거로 발전하는 변화를 선거방식에 담아보고자 합니다. 웹2.0 시대에 맞는 ‘공유, 참여, 개방’의 선거운동을 개발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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