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개방과 복지국가
(이성재) 김영삼 대통령이 OECD 가입한다며 ‘세계화’ 한다고 한 이후에 이제는 세계화를 붙이지 않으면 무식한 사람 취급 받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세계화가 국민의 불안을 낳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도 집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세계화로 인한 압력이 있어도 사회복지가 일정 정도 뒷받침해주면 유지가 가능한데 그런 것이 없으니 문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나눈 말씀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적어도 대한민국은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인데 다른 나라 국민들도 우리나라국민들 만큼이나 불안한지도 묻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세계화의 압력이 있어도 사회복지가 국민의 생활을 뒷받침해주면 사회가 불안하지 않게 유지 가능한 건데 사회복지라는 뒷받침 없이 세계화만 강행하니 조만간 사회시스템이 폭발해 버리지 않겠습니까?
(윤종훈) 북유럽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핀란드는 인구 500만, 스웨덴은 인구 천만 정도이기 때문에 내수시장만으로 경제를 유지 할 수 없습니다. 핀란드의 국민기업이라는 노키아는 국내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도 안 되며 90% 가까이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들은 적극적으로 시장개방을 했는데 그런데도 국민들은 불안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그대로 삶의 불안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핀란드가 복지국가 유지를 위해 매우 높은 소득세를 개인에게 부과시키는데도 기업과 사람들이 핀란드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핀란드만이 가진 경쟁력 때문입니다. 그러한 높은 세금으로 유지되는 고도의 복지국가가 만들어내는 경쟁력 있는 인력이야말로 최고의 국제경쟁력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병이 나거나 사고를 당해도 인생 막다른 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회사에서 잘리면 인생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나라에서는 복지국가가 2년까지 다른 직장을 준비하며 공부할 기회를 줍니다. 따라서 한두 번 실패가 있더라도 절망이 없는 사회, 언제든지 새롭게 도전할 기회를 주는 사회, 안정과 혁신이 같이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복지국가 시스템이지 세계화가 아닙니다. 복지를 낭비로 보는 것은 왜곡된 시각입니다. 시작도 안한 복지를 두고 복지병을 우려하는 것도 지식인들의 기만이나 무식의 소치입니다.
(이성재) 한미FTA의 경우에도 복지를 빼놓고 생각하니 답이 나오지 않는 갑갑한 상황이 됩니다. 시장개방이 문제가 아니며 노동유연성도 문제가 아니라면 복지국가의 결여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시장개방을 반대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 사회복지 제도의 확립이 살 길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상이) 개방과 유연화가 준비 안 된 개방, 준비 않된 유연화일 경우에는 국민이 고통스러운 거죠. 스웨덴, 핀란드는 능동적으로 개방하고 유연화시킨 경우인데, 능동적 개방이 가능한 것은 높은 수준의 복지인프라 구축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승일) 94년도의 WTO 협상에서 농민운동은 시장개방을 반대하기만 했고 그 반대편 사람들은 시장개방의 장점만 봤습니다. 하지만 세계화와 시장개방은 무조건 반대할 것도 아니고 무조건 찬성할 것도 아닙니다. WTO에 가입하기 전에 먼저 선진국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어야 했고, OECD 가입에 즈음한 금융시장 개방 이전에 악성 외국자본이 제멋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융보호 장치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것을 당시에는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9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 개혁진보 세력은 은연중에 대부분 시장주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었습니다. 세계화가 무조건 좋으니 사회보장도 없이, 금융시장 보호장치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무능한 진보, 방향과 내용을 상실한 진보
(정승일) 또 하나 논의해야할 점은 왜 우리나라의 개혁진보 세력이 복지국가 구상을 지난 20년간 하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게으름과 태만 때문이었나요?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었나요? 우리나라 진보세력 중 많은 분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인정하길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복지국가도 결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불과하므로 더 이상 관심도 없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대안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타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항상 반대만 했지 구체적 대안은 한번도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이에 반해 ‘현실주의’ 개혁을 주장해온 세력은 구체적 대안들은 제시했는데 실은 그것이 자유주의적 시장개혁 노선과 대동소이했습니다. 이들 현실주의 개혁세력은 투명성 강화 등 시장원리 철저화에 관심이 있었을 뿐 복지국가에 대한 별다른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개혁진보 세력은 대안제시에 무능했습니다. 무능한 진보라는 비난을 들어 마땅합니다.
(배규식) 90년도 초 동구권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진보세력은 미래지향성을 잃어버립니다. 그 이후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대부분의 운동이 결국은 실리주의로 귀착 되었습니다. 싸움의 행태는 매우 격렬하지만 실제의 내용은 자기집단의 이익강화였습니다. 사회적 연대 원칙은 매우 빈약해졌습니다.
(윤종훈) 행태와 가치를 혼동하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 이명박의 상스러운 말투와 거친 추진력을 많은 사람들이 ‘진보’로 착각합니다. 노동운동도 총파업 투쟁 등 행태는 과격하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이기주의적인 경향이 강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행태 속에 담긴 가치와 사상, 내용인데도 사람들은 거기에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진정한 진보는 복지국가 지향성입니다. 그것 없이 진보를 말하는 것은 사기행위입니다
복지국가의 가치관에서 볼 때, 노무현 정부는 진보는커녕 매우 보수적입니다. ‘06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연설에서 증세가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무척 감동했습니다. 이제 이 양반이 정신 차렸나 보다 하구요. 그런데 한미 FTA를 덜컥 맺어버리는 것을 보고 제가 잠시 착각했다는 것을 알았지요.
노무현 정부는 임기 초인 2003년도에 감세했고 임기 말인 올해에도 감세했습니다. 최근, 4월 임시 국회에서 해외투자펀드 수익에 대한 비과세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복지국가를 향한 지향성에서 더욱 더 멀어지는 방향으로 조세정책을 내놓은 것이 노무현 정부입니다. 노 대통령이 2년 동안 감세한 것만 따져도 연 4조원이 날아갔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들먹이며 아동복지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감세로 날려버린 연 4조원만 투자해도 우리나라 아동복지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는데도 말로만 아동복지를 떠들고 다닙니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골프용품에 대한 특소세를 면제 했는데, 명분이 골프채 생산하는 중소기업 살리기입니다. 그런데 실제 국내에서 사용되는 골프채의 90%가 외제라고 합니다. 그렇게 거짓말하면서 국민을 속이고 부자들의 주머니를 부풀리면서, 앞으로는 증세를 떠들고 뒤로는 감세하고 이렇게 혼란스럽습니다. 내용으로는 철저히 시장주의고, 한나라당하고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인 양 말투만 과장합니다.



